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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북 vs 히든 피겨스: 천재성과 차별의 교차점

by 2thrich 2025. 4. 18.

‘그린북(Green Book, 2018)’과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2016)’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로,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인종차별과 그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두 영화는 각각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비주류로 분류된 인물들이 어떻게 편견과 제약 속에서 ‘천재성’을 발휘하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방식과 시선, 전달 방식은 다릅니다.

 

이 글에서는 ‘그린북’과 ‘히든 피겨스’를 비교하여, 두 영화가 공통적으로 전달하는 주제와 그 표현 방식의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천재성에 가려진 인간성: 두 인물의 존재감

‘그린북’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돈 셜리 박사는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드는 천재 피아니스트입니다. 그는 백인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음악가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미국 남부 공연 중 심각한 차별을 겪습니다. 그와 함께 여행하는 백인 운전사 토니 발레롱가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사회가 천재성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피부색이라는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이중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반면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은 모두 나사(NASA)에서 실제로 활약한 흑인 여성 수학자들입니다. 그들은 당대 과학기술의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천재’라는 평가를 받기까지는 더 많은 노력과 침묵,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그녀들이 마주한 벽은 단지 인종차별뿐 아니라 성차별 이기도 했으며, 영화는 이를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두 영화 모두 ‘천재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인물의 가치를 조명하지만, ‘그린북’은 인물의 내면과 관계를 중심으로, ‘히든 피겨스’는 구조와 시스템을 향한 저항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한 명의 천재가 사회와 부딪히는 과정을 보여주는 ‘그린북’과, 여러 명의 천재가 연대하며 길을 만들어가는 ‘히든 피겨스’는 이 지점에서 결이 다릅니다.

 

차별의 장면화: 관찰과 투쟁의 방식

‘그린북’은 백인인 토니의 시선을 통해 흑인인 돈 셜리의 삶을 관찰하는 구조를 취합니다. 관객은 토니와 함께 차별의 현실을 보고, 점차 깨달음을 얻는 여정을 따라가게 됩니다. 이는 비교적 부드러운 방식으로 인종차별을 다루며, 감정에 중점을 둡니다. 영화는 갈등의 직접적인 충돌보다는 일상 속 불편함, 모욕, 제한된 행동들로 차별을 드러냅니다.

 

반면 ‘히든 피겨스’는 보다 직접적이고 구조적인 묘사를 선택합니다. 화장실을 쓰기 위해 건물 밖으로 40분 이상 걸어가야 하는 캐서린의 모습, 자판기 앞에서 “Colored”라는 단어가 써 있는 공간에서 차별을 느끼는 장면 등은 명확하고 구조적인 차별을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이 영화는 감정에 의존하기보다는 시스템을 비판하고, 그 안에서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인물들을 강조합니다.

 

이런 차이는 관객이 차별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린북’은 변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며, 인간적인 교감으로 벽을 허무는 서사를 담고 있고, ‘히든 피겨스’는 연대와 능력을 통해 시스템을 바꾸는 서사를 보여줍니다. 이는 각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접근 방식의 뚜렷한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술과 과학, 문화적 표현의 차이

‘그린북’은 예술이라는 분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음악은 돈 셜리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며, 동시에 그가 가진 고독과 이질성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음악을 통해 그는 존중받지만, 연주를 마친 후 식당에 들어갈 수도 없는 현실은 그의 예술이 여전히 피부색의 한계를 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문화적 아이러니가 영화의 주요 테마로 작용합니다.

 

반면 ‘히든 피겨스’는 과학과 기술을 중심으로, 사회 발전과 인류의 미래를 위한 분야에서조차 차별이 존재함을 고발합니다. 영화는 숫자와 데이터, 계산이라는 객관적 도구 안에서도 편견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는 과학이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을 부각하고, 지식의 권력화 구조를 은연중에 드러냅니다.

 

두 영화는 각각 문화적, 과학적 배경을 통해 차별과 인간의 존엄성을 설명합니다. 예술은 감정의 연대와 개인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며, 과학은 논리와 시스템을 통한 구조적 변화를 상징합니다. 이 점에서 ‘그린북’과 ‘히든 피겨스’는 차별을 바라보는 프레임과 해결 방식에 있어서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그린북’과 ‘히든 피겨스’는 서로 다른 시선과 방식으로 같은 본질적인 메시지를 전합니다. 인종과 성별, 계급이 나뉘어 있던 1960년대 미국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이들은 천재성과 인간성을 통해 편견과 마주하고 그것을 넘어섭니다. 한 영화는 예술로, 다른 영화는 과학으로 진실을 말하며,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존중과 평등을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필요한 질문, “나는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가?”를 이 두 영화는 조용하지만 강하게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