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영화는 오랫동안 ‘희생자’나 ‘조력자’로 소비되어 왔지만, 영화 속 여성의 역할이 점차 주체적으로 변화하면서 새로운 여성 서사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1991)’와 ‘툼 레이더(Tomb Raider, 2001/2018)’는 각기 다른 장르와 방식으로 여성 주인공의 강인함을 조명한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전자는 로드무비를 통해 여성의 자유와 연대를 다루며, 후자는 액션 어드벤처 장르 속에서 육체적 능력과 모험심을 부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두 작품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여성 강인함’의 상이한 형태를 중심으로, 그 차이점과 의미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델마와 루이스: 현실을 살아내는 여성의 저항과 연대
‘델마와 루이스’는 가정 폭력, 성폭력, 일상의 억압 등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구조적인 문제를 배경으로 합니다. 영화는 두 여성, 델마와 루이스가 ‘잠깐의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되지만, 이 여행은 곧 여성의 생존권과 자율성을 위한 탈출로 변합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보이는 강인함은 물리적인 힘보다는 ‘결단력’과 ‘연대’에서 비롯됩니다.
루이스는 단호하고 냉철한 리더의 면모를 보이며, 델마는 점차 억눌린 삶에서 깨어나 스스로 행동하는 인물로 변모합니다. 이들이 함께 하는 여정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의 ‘도망’이라기보다는 ‘저항’의 행위입니다. 자신들을 둘러싼 억압적인 구조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선택은 매우 현실적이며, 감정의 깊이를 동반한 인격적 성장의 과정으로 이어집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여성의 강인함이 남성적 기준의 ‘힘’이나 ‘전투력’에 기반하지 않고, 현실에서의 억압을 견디고 극복하려는 ‘의지’와 ‘연대’를 통해 형성된다는 점입니다. 델마와 루이스는 총을 들고 싸우는 전사가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인간입니다.
툼 레이더: 육체와 모험 속에서 구축된 여성 영웅
반면, ‘툼 레이더’의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Lara Croft)는 고전적인 액션 히어로의 공식을 따라가면서도, 여성 캐릭터로서의 전형성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보여줍니다. 라라는 고도의 신체 능력, 무기 사용, 논리적 사고와 지도력까지 겸비한 완성형 캐릭터입니다. 그녀는 고대 유물을 찾기 위해 위험한 유적지와 정글을 탐험하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위협을 홀로 헤쳐 나갑니다.
이러한 라라의 모습은 전통적인 남성 액션 히어로와의 비교를 통해 더욱 돋보입니다. 그녀는 단순한 성적 대상이 아닌, 서사의 중심을 장악한 주체적인 인물이며, 특히 2018년 리부트 버전에서는 인간적인 고뇌와 감정이 더 강조되면서 더욱 입체적인 인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툼 레이더에서 강조되는 강인함은 ‘육체적인 힘’과 ‘독립성’입니다. 라라는 구조되기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인물입니다. 비록 초현실적인 설정이 많고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환경 속에 있지만, 그 안에서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며 남성과 대등한 캐릭터로 우뚝 섭니다. 이러한 형식은 대중에게 통쾌함을 주는 동시에, 여성이 액션 서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강하게 각인시킵니다.
강인함의 의미: 현실성 vs 이상형, 감정 vs 기능
‘델마와 루이스’와 ‘툼 레이더’의 가장 뚜렷한 차이는 ‘강인함’의 구현 방식에 있습니다. 전자는 현실에 기반한 감정의 복잡성과 인간관계를 통해 여성의 강인함을 그리는 반면, 후자는 이상화된 영웅 서사를 통해 여성이 전통적인 히어로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델마와 루이스의 여정은 절망과 희망, 우정과 저항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현실에 깊게 뿌리내린 경험을 담고 있습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폭력적인 선택도 불사하지만, 그 선택은 순간의 쾌감이 아니라 억눌린 여성의 분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현실을 직시하며, 타협 대신 끝까지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태도는 강인함의 가장 인간적인 표현입니다.
반면, 라라 크로프트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감정보다는 기능 중심의 행동을 보이며, 전형적인 액션 히어로의 틀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합니다. 그녀는 공포나 불안을 드러내기보다는 이를 극복하는 방식으로 강인함을 보여주며, 이로 인해 일부 관객에게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캐릭터 역시, 여성 서사 확장의 한 방식으로서 존재 가치를 가지며, 여성이 다양한 장르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델마와 루이스’와 ‘툼 레이더’는 서로 다른 장르와 방식으로 여성 주인공의 강인함을 조명한 작품입니다. 전자는 현실 속 연대와 감정을 통해, 후자는 액션과 모험을 통해 각기 다른 여성상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작품 모두 여성이 ‘주체적인 존재’로 서 있다는 점입니다. 강인함이란 단지 신체 능력이나 무기 사용에 국한되지 않으며, 억압된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고 변화시키는 모든 행동 속에 존재합니다.
두 영화는 강인함의 다양한 정의를 관객에게 제시하며, 여성 캐릭터의 가능성을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방식이든, 더 많은 여성 주인공이 중심에 서는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