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Minari, 2020)’와 ‘더 파더(The Father, 2020)’는 모두 가족을 중심 주제로 한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완전히 다른 시선과 분위기로 가족 안에서의 역할, 책임, 그리고 감정의 균형을 다루며 깊은 울림을 전달합니다.
‘미나리’는 이민자 가족이 낯선 땅에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겪는 세대 간 충돌과 희망을 보여주고, ‘더 파더’는 치매를 겪는 아버지와 그의 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균열을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두 영화는 서로 다른 문화권과 세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가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누가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닙니다.
이 글에서는 ‘미나리’와 ‘더 파더’가 각각 어떻게 가족의 역할과 책임을 조명하고 있는지를 비교 분석합니다.
부모의 책임, 꿈과 현실 사이의 갈등
‘미나리’의 중심에는 아버지 제이콥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아칸소의 외딴 시골에 정착해 농장을 일구려는 꿈을 꿉니다. 제이콥은 자신이 가족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아내 모니카와의 갈등이 점점 깊어집니다. 그는 ‘좋은 가장’이라는 책임을 지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때로는 가족의 정서적 안정보다 경제적 성취를 우선합니다.
반면 ‘더 파더’에서의 가족 역할은 반대 방향에서 접근됩니다.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한 아버지는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으로, 더 이상 독립적인 생활이 어렵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아버지’로서 존중받기를 원합니다. 딸 앤은 아버지를 돌보는 일상의 무게에 점점 지쳐가고, 현실과 감정 사이에서 괴로워합니다. 영화는 치매라는 질병을 통해 가족의 ‘책임’이 단순히 헌신이나 도리가 아닌, 감정적 부담과 삶의 방향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음을 섬세하게 그립니다.
이처럼 두 영화 모두 가족 안에서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과 책임을 다루지만, ‘미나리’는 미래를 향한 도전과 갈등을, ‘더 파더’는 현실의 수용과 정서적 소모를 중심으로 이야기합니다. 이는 부모라는 역할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시기와 조건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자녀의 위치, 감정의 중간자 혹은 돌봄의 주체
‘미나리’에서 자녀들은 부모의 갈등을 고스란히 옆에서 지켜보는 위치에 있습니다. 특히 어린 아들 데이비드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상태이면서도, 할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가족의 정서적 중심을 담당합니다. 그는 아직 현실적인 책임을 질 수 없는 어린아이지만, 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긴장을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세대 간 연결의 매개체로 그려집니다.
반면 ‘더 파더’에서는 자녀인 앤이 사실상 부모를 돌보는 ‘돌봄의 주체’가 됩니다. 아버지의 기억이 점차 사라지고, 현실과 허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앤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아버지를 보호하려 애씁니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자녀가 부모의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전통적 가족 책임 개념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합니다.
두 영화에서 자녀는 단지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가족 구조 안에서 필연적으로 변화하는 관계의 일부로 표현됩니다. ‘미나리’에서는 정서적 안정의 중심이, ‘더 파더’에서는 물리적 돌봄의 책임자가 되는 과정은 세대 간 역할 교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공간과 상황이 만들어내는 가족의 형태
‘미나리’는 물리적으로 낯선 땅에서 정착하려는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이민이라는 전제가 가족 간 갈등을 가속화시키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결속을 만들어냅니다. 물리적인 불편함, 언어와 문화의 이질감 속에서 가족 구성원은 점차 서로를 이해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하면서 ‘미나리’라는 식물이 그러하듯 뿌리를 내려갑니다.
반면 ‘더 파더’의 배경은 친숙한 집이라는 공간이지만, 영화는 그 공간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면서 아버지의 혼란을 관객에게도 체험하게 만듭니다. 시간과 공간이 뒤엉키는 구조는 ‘기억’이 가족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상기시키며, 그 기억이 사라질 때 가족 관계도 흔들릴 수 있음을 시각적으로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두 영화는 각각 낯선 공간과 익숙한 공간을 무대로 삼지만, 그 속에서 가족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미나리’는 외부 조건 속에서의 내부 단단함을, ‘더 파더’는 내부 조건의 붕괴가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집중 조명합니다.
‘미나리’와 ‘더 파더’는 가족이라는 주제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깊이 있게 파고듭니다. ‘미나리’는 세대 간 갈등과 문화적 이질감 속에서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고, ‘더 파더’는 기억과 돌봄, 그리고 끝을 향해 가는 가족의 시간을 정직하게 그려냅니다. 이 두 작품은 서로 다른 삶의 단계에서, 부모와 자녀, 보호자와 보호받는 이의 역할이 어떻게 변하고, 또 그 책임이 얼마나 복잡한 감정의 무게를 동반하는지를 감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가 가족 안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책임과 역할을 다시 묻고 싶다면, 이 두 영화를 꼭 함께 감상해 보시기를 권합니다.